기사제목 이정현, 한국정치 희망을 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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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한국정치 희망을 쏘다

7 30 보궐선거, 순천 곡성선거구 당선
기사입력 2014.07.3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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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7·30보궐선거 순천 곡성 선거구에서 당선됐다. 4번의 도전끝에 화석처럼 굳어있는 지역정서를 뚫고 희망을 새겨넣었다. 뿌리깊은 영호남 지역구도로 얼룩진 한국정치사의 이변을 일으킨 것이다. 정치권은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처참한 패배로 규정하고 있다. 김한길 안철수 대표는 당장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할 처지이고 야권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그러나 이 사건은 한국정치사의 큰 획을 그은 사건이다. 그의 당선에서 우리 국민들이 한국정치의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정현, 그는 누구인가. 
 
이정현 당선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입', '박근혜의 복심'으로 으로 불리운다. '박심(朴心)'을 정확히 읽어내는 최측근 인사라는 표현이다. 1984년 민정당 당직자로 정계에 입문한 이 당선자는 박 대통령의 속마음과 철학 등을 가장 잘 꿰뚫고 있는 인사 중 한명으로, 친박계 핵심 중 핵심이다.
 
11가구가 모여 사는 곡성군 목사동면 동암리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이 당선인은 십오리 길인 순천 주암까지 걸어서 중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광주 살레시오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한 이 당선인은 대학시절 보낸 한통의 편지로 민정당(현 새누리당)과 인연을 맺게된다. 
 
이 당선인은 당시 구용상 전 광주시장이 민정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출마할 때 “정치 똑바로 하라”는 편지를 보낸 인연으로 구 의원의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그후 쭉 민정당의 하급당직자로서 생활해온 그는 1995년 제 1회 지방선거 때 광산구 제 2선거구 시의원으로 출마한다. 하지만 그해 지방선거는 정계 복귀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가 ‘황색돌풍’을 일으키며 호남 싹쓸이에 나선 때로 89.94%의 득표율을 기록한 전갑길 전 의원에 이어 10.05%로 2위를 차지, 낙선했다.
 
그럼에도 그는 ‘한나라당의 속 호남맨’이라는 희귀성, 그리고 정국의 흐름과 움직임을 읽어내는 특유의 전략가적 능력을 인정받아 점차 고위 당직자로 승진한다. 2002년 이회창 후보캠프의 전략기획단장을 맡는 등 전략통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그가 다시 호남정계로 돌아온 것은 2004년 제 17대 총선이었다.
 
탄핵 열풍으로 민주당도 열린우리당에 밀려 광주에서 한 석도 건지지 못했던 때로 한나라당이 광주에서 후보를 내지 못하자 이 당선인은 “어떻게 전국정당이 되겠다는 당이 한 지역을 통째로 버릴 수 있냐”며 광주 서구 을에 출마를 선언했다. 결과는 720표, 득표율 1.03%라는 저조한 성적표 5명의 후보 중 꼴등으로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지만 박 대통령과의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맡고 있던 박 대통령이 이 당선인에게 “지역구를 방문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식사 약속을 한다. 이후 식사자리에서 이 당선인은 박 대통령에게 “한나라당이 전국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호남을 버리면 안 된다”며 30분간 열변을 토했고, 박 대통령은 “말을 참 조리있게 잘하네요”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 당선인은 호남 몫 당 지명직 최고위원을 거쳐 대선기간 박근혜 후보 공보단장으로 활약한다. 이 당선자는 11년간 박 대통령의 '입' 역할을 했다. 2004년 17대 총선직전 탄핵국면에서 박 대통령이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지낼 때 수석부대변인으로 발탁되면서부터다. 이후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에도 박근혜 후보 대변인을 맡았다. 박 대통령이 대선 경선 패배 후 정치적 칩거를 하던 (2008년∼2010년)시절에도 전례가 없는 '대변인격(格)'이라는 직함을 갖고 박 대통령의 대변인을 자처했다.
 
대선 이후엔 박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이끈 대표적인 공신으로 꼽히면서 비서실 정무팀장에 기용돼 박근혜 정부의 '실세'로 부상했다. 이후 청와대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으로 발탁되면서 당·청간의 소통을 주도하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약력은
 
△1958년 전남 곡성 △살레시오고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 선거대책본부 전략기획단 단장 △한나라당 정책기획팀 팀장 △한나라당 상근 부대변인 △제18대 국회의원 △국회 예결·문방· 법사 위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캠프 공보단장 △새누리당 최고위원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비서실 정무팀장 △청와대 정무수석 홍보수석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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