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최근 사의를 표명했다. 국회에서 통과된 상법 개정안에 대해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한 직후였다. 금융당국 수장으로서 입장을 분명히 밝힌 그의 대응은, 요즘처럼 신중함을 넘어 침묵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관가 분위기 속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고, 자산 2조 원 이상의 상장사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며,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제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핵심은 대주주 중심의 지배구조를 견제하고 소액주주의 권한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 원장이 해당 개정안에 긍정적 입장을 보여온 이유는 분명하다. 자본시장의 투명성과 신뢰 제고, 그리고 주주가치 중심의 경영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는 판단이었다.
반면 정부는 이 법안이 기업 경영에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보고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 국무총리가 나서 “시장과 충분한 소통이 부족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복현 원장 입장에서는 정책적 일관성과 금융시장에 줄 신호를 우려했을 가능성이 높다.
재계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부터 우려의 목소리를 내왔다. 이사의 법적 책임이 과도해질 수 있고, 집중투표제와 감사 분리선출이 기업 경영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이유였다. 결국 경제단체들은 정부에 재의요구권 행사를 공식 요청했고, 정부는 이를 수용했다.
이 사안을 단순한 법안 처리의 문제로만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밸류업 코리아’라는 이름 아래 정부가 강조해온 지배구조 개선, 주주친화 정책과도 연결되는 흐름이기 때문이다. 상법 개정안은 그 방향성의 출발점으로 상징적 의미가 있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시장이 받은 신호다. 정부가 주주 권익과 자본시장 개혁보다 기업 편익을 우선한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점이다. 밸류업 코리아 전략의 핵심은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주주환원 확대다. 이번 상법 개정안이 그 첫 단추였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정부 스스로 내건 기조와 배치된다.
이복현 원장은 현재 사의를 보류한 상태다. 그러나 그의 사의 표명은 ‘개혁이 좌초된 순간’이라는 인식을 시장에 남겼다. ‘밸류업’이라는 말의 진정성을 시험한 첫 시험대에서, 우리는 이미 결과지를 받았다.
[비즈트리뷴 = 박소망 기자]